신청 방법
 
다운로드
 
자격 조건
 

고래의 기억을 되새기는 7가지 방법

장생포 고래요릿집은 단순히 '고래를 먹는 장소'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어떤 **'애도와 향수의 정서'**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고기를 음미하는 행위는 과거의 산업과 생업이 사라진 그리움을 담아내는 의식적인 행위입니다.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고래 고기는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고래의 시간을 씹고, 도시의 기억을 삼키며, 공동체의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포항의 '구룡포'를 떠올리면 과메기가 떠오르고, 울산의 '장생포'를 생각하면 고래가 떠오릅니다. 수국 축제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지난 주말, 로컬100에 이름을 올린 장생포문화창고를 찾았습니다. 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는 고래문화특구로 지정되어 길가의 가로등과 안내판,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고래가 유유히 떠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다는 알고 있었고, 우리의 조상들도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죠. 울산광역시 울주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잡이 그림이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 고래 뼈와 유물들을 통해, 선사시대부터 이곳 장생포는 고래가 모이는 깊은 바다였던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장생포의 바다는 사라진 고래들처럼 그 깊이와 조수 차가 작아서 염전과 해조류의 성장은 물론, 고래가 새끼를 낳기에도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장생포는 또한 주변의 강들에서 유입되는 부유물과 플랑크톤 덕분에 고래가 찾는 명소가 되었기에, 신출귀몰하게 나타나는 '귀신고래'가 단골손님이었을지 모릅니다. 고래가 드나드는 푸른 바다의 깊이는 대형 선박이 접근하기에 용이했고, 한 때 어업이 성행했었던 이곳은 수출입품을 실어 나르는 대형 선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장생포의 문화재생과 기억

장생포의 문화 및 역사적 기억은 최근에 들어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의 고래잡이 산업이 사라진 이후, 장생포에 남겨진 냉동창고는 당분간 방치되었으나, 지자체와 시민들이 힘을 합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2016년 울산 남구청이 건물과 토지를 매입한 뒤, 2021년 장생포문화창고를 개관하여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남구청과 시민들이 참여하여 만든 이 문화창고는 현재 주민들에게 무료로 문화 체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6층 규모의 장생포문화창고는 다양한 전시실과 체험 공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소극장, 녹음실, 연습실뿐만 아니라 두 개의 커다란 갤러리와 상설 미디어 아트 전시관 역시 있어요. 아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에어장생(장생의 고래 캐릭터)' 항공 체험도 마련되어 있어 어린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활동이 많습니다. 비행기 모형의 에어바운스는 오는 8월 24일까지 계속되는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줄 것입니다.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들

이번 장생포문화창고 방문에서 가장 감동했던 것은 '조선의 결, 빛의 화폭에 담기다'라는 주제로 전시된 미디어 아트였습니다.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의 작품들이 거대한 미디어 아트로 재현되었고, 이 작품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감성을 선사해주었습니다. 화려한 색감의 서양화 위주의 미디어 아트와는 다른 고요하고 단아한 수묵화와 풍경화는 우리의 정서를 자극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하나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또한, 상설 전시된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관'은 울산의 공업 역사와 과정을 보여줍니다. 부모님 세대가 울산의 발전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내 고향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울산석유화학단지는 대한민국의 산업 심장부로서 한강의 기적을 주도한 곳으로, 그 과거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장생포 고래잡이의 역사적 배경

장생포 고래잡이가 조선시대 이후 다시 부활한 것은 지난 백 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한반도 주변의 바다는 한 때 고래의 황금어장으로 알려졌지만, 외국의 포경선들이 남획을 하면서 고래는 점차 사라졌습니다. 일본의 영향 아래에서 근대 고래잡이가 시작되었고, 1946년에는 최초의 조선포경주식회사가 설립되었습니다. 하지만 1986년부터 상업 포경이 전면 금지되며 장생포의 고래잡이 역사도 저물어가게 됩니다.

고래를 소재로 한 장생포의 문화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고래고기는 장생포에서 먹어야 제맛'이라는 말처럼, 현재도 이 지역에서 고래고기를 배우고 맛보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비록 고래는 사라졌지만, 고래고기는 소중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부활할 수 있습니다.

고래요릿집에서의 특별한 경험

장생포의 고래요릿집은 단순히 고래를 먹는 곳이 아닙니다. **'애도와 향수의 정서'**가 담긴 고향의 뜨거운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인상 깊은 장소입니다. 고래고기를 한 점 한 점 음미하며 우리는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되새겨 봅니다.

고래요릿집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일반적인 식사로서의 기능을 넘어서는, 과거를 애도하고 회상하는 의례와도 같습니다. 고래잡이를 통해 자신들의 생계를 유지했던 어부들, 6.25 전쟁을 겪으며 고래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했던 피란민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낸 산업 역군들을 기리는 문화적 지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장생포의 고래는 사라졌지만, 고래고기는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고래의 시간을 되새기며, 도시의 기억을 잊지 않고, 공동체의 내일을 준비합니다. 고래는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는 우리의 정체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장생포의 고래는 우리에게 단순한 추억의 소재가 아니라, 잊지 않고 기억할 문화적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